나는 누구인가··· 유려하게 그린 천문학자의 인간·우주 탐색

36번째 작품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명사 101인 추천 도서목록은 chosun.com 배명훈이 읽은 ‘코스모스’ 옛날 이야기처럼 쉽게 다가오는 무한한 공간·생명에 대한 경이 분야를 넘어서는 이야기의 확장 아름답고 문학적인 표현까지 나의 SF적 발상에도 영향을 미쳐 배명훈 과학소설 작가 36번째 작품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명사 101인 추천 도서목록은 chosun.com 배명훈이 읽은 ‘코스모스’ 옛날 이야기처럼 쉽게 다가오는 무한한 공간·생명에 대한 경이 분야를 뛰어넘는 이야기의 확장 아름답고 문학적인 표현까지 나의 SF적 발상에도 영향을 미쳐 배명훈 과학소설 작가

청소년기에 감명 깊게 읽은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그 시절 내가 가장 오래 잡고 있던 책은 31권의 백과사전으로, 딱 떠오르는 책을 찾기 힘든데 그때 다행히 떠오르는 책이 한 권 있다. 몇 학년 때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중학교 시절, 어느 무더운 여름방학. 에어컨이 귀하던 시절이라 바람이 잘 통하도록 문을 앞뒤로 열어놓고 움직임을 최대한 줄이면서 바람이 통하는 길목에 가만히 누워 집안 어딘가에 나뒹굴던 두꺼운 책 한 권을 읽기 시작했다. 코스모스라는 제목의 과학책이었다. 수식이 거의 나오지 않는 말뿐인 과학책이었지만 중학생이 읽기에는 좀 벅찰 수도 있다. 그러나 하필이면 그 책을 손에 쥐는 바람에 그해 여름 나는 그만 우주를 둥둥 떠다니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청소년기에 감명 깊게 읽은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그 시절 내가 가장 오래 잡고 있던 책은 31권의 백과사전으로, 딱 떠오르는 책을 찾기 힘든데 그때 다행히 떠오르는 책이 한 권 있다. 몇 학년 때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중학교 시절, 어느 무더운 여름방학. 에어컨이 귀하던 시절이라 바람이 잘 통하도록 문을 앞뒤로 열어놓고 움직임을 최대한 줄이면서 바람이 통하는 길목에 가만히 누워 집안 어딘가에 나뒹굴던 두꺼운 책 한 권을 읽기 시작했다. 코스모스라는 제목의 과학책이었다. 수식이 거의 나오지 않는 말뿐인 과학책이었지만 중학생이 읽기에는 좀 벅찰 수도 있다. 그러나 하필이면 그 책을 손에 쥐는 바람에 그해 여름 나는 그만 우주를 둥둥 떠다니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저자 칼 세이건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과학자 중 한 명이었지만 그런 점은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천장을 향해 누운 내 눈앞에 펼쳐진 우주는 난생 처음 접하는 경이로움의 덩어리였다. 무한한 공간에 대한 거대한 묘사, 극소세계에서 펼쳐지는 신비한 생명현상, 우주의 나이에 비하면 너무 짧지만 그래도 수천 년의 시간을 두고 펼쳐지는 지구인들의 장대한 과학사 혹은 문명사, 그리고 거기서 유추되는 어쩌면 우주 너머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어떤 문명 혹은 어떤 생명체의 모습에 대한 상상. 그런 엄청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듯 눈앞에 확 퍼져버린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많은 이야기가 과학자 특유의 계몽적인 목소리가 아니라 그야말로 옛이야기처럼 술술 풀렸다는 것이다. 공부를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은 굳이 파고들 틈조차 없었다. 마치 내가 직접 우주의 비밀을, 그 속에 숨겨진 놀라운 진실을 낱낱이 밝히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자연스러운 속도로 나는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책 밖에 남겨둔 자아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남기지 않은 채 멍하니 있다. 저자 칼 세이건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과학자 중 한 명이었지만 그런 점은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천장을 향해 누운 내 눈앞에 펼쳐진 우주는 난생 처음 접하는 경이로움의 덩어리였다. 무한한 공간에 대한 거대한 묘사, 극소세계에서 펼쳐지는 신비한 생명현상, 우주의 나이에 비하면 너무 짧지만 그래도 수천 년의 시간을 두고 펼쳐지는 지구인들의 장대한 과학사 혹은 문명사, 그리고 거기서 유추되는 어쩌면 우주 너머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어떤 문명 혹은 어떤 생명체의 모습에 대한 상상. 그런 엄청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듯 눈앞에 확 퍼져버린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많은 이야기가 과학자 특유의 계몽적인 목소리가 아니라 그야말로 옛이야기처럼 술술 풀렸다는 것이다. 공부를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은 굳이 파고들 틈조차 없었다. 마치 내가 직접 우주의 비밀을, 그 속에 숨겨진 놀라운 진실을 낱낱이 밝히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자연스러운 속도로 나는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책 밖에 남겨둔 자아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남기지 않은 채 멍하니 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 저자에게는 그렇게 과학의 수많은 분야를 한 권의 책으로 다뤄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그가 찾고 있는 대상인 외계 생명체에게 다가가기 위해서였다. 아마도 꽤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 고도의 문명을 이룬 외계 문명의 신호. 혹은 어쩌면 꽤 가까이에, 아마 바로 옆 행성인 화성 정도라면 반드시 발견할 수 있는 원시적인 외계 생명체의 아주 작은 흔적이라도. 그 일을 이루기 위해 일단 스스로 생물학에 정통한 천문학자가 돼야 했던 칼 세이건에게 이런 형식은 당연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하나하나 떨어져 있고, 밖에서 보면 서로 무슨 연관이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물리학, 천문학, 생물학, 화학이 아니었다.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가 명확한 상황에서 그 일을 해내기 위해 필요하다면 무엇이든 경계를 불문하고 끌어오는 자연스러운 중첩과 확장. 그래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는 평소 같으면 별로 만나고 싶지 않았던 유전학, 생물학, 천문학, 물리학, 그리고 화학. 이후 나는 과학이 재미있었다. 시험 성적과는 약간 차이가 있었고, 친구들은 모두 이상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 블록들이 어떻게 맞춰질 수 있는지 큰 그림을 한 번 보면 그들도 아마 비슷한 생각을 했을 거라고 믿는다. 이 책을 읽고(혹은 이 책의 원본에 해당하는 TV 시리즈를 보고), 과학자가 된 분들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추천하는 책. 하지만 이 책은 학습용이라고만 하기엔 너무 아깝다. 그 안에 담겨 있는 온갖 경이로운 현상들, 그 경이로움에 다가가는 인간의 상상과 노력, 그리고 모두가 감탄해 마지않는 문학적이기까지 한 아름다운 표현들. 따지고 보면 과학소설(SF)이 담으려는 것 중 가장 중요한 몇 가지가 내가 그 시절에 읽었던 책 속에 들어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나도 모르게 그것들을 받아들이는 데 성공했다. 그렇다면 이 책이 과학소설 작가인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일까. 물론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SF적 발상의 뿌리를 파고들다 보면 이 책을 만나게 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 저자에게는 그렇게 과학의 수많은 분야를 한 권의 책으로 다뤄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그가 찾고 있는 대상인 외계 생명체에게 다가가기 위해서였다. 아마도 꽤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 고도의 문명을 이룬 외계 문명의 신호. 혹은 어쩌면 꽤 가까이에, 아마 바로 옆 행성인 화성 정도라면 반드시 발견할 수 있는 원시적인 외계 생명체의 아주 작은 흔적이라도. 그 일을 이루기 위해 일단 스스로 생물학에 정통한 천문학자가 돼야 했던 칼 세이건에게 이런 형식은 당연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하나하나 떨어져 있고, 밖에서 보면 서로 무슨 연관이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물리학, 천문학, 생물학, 화학이 아니었다.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가 명확한 상황에서 그 일을 해내기 위해 필요하다면 무엇이든 경계를 불문하고 끌어오는 자연스러운 중첩과 확장. 그래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는 평소 같으면 별로 만나고 싶지 않았던 유전학, 생물학, 천문학, 물리학, 그리고 화학. 이후 나는 과학이 재미있었다. 시험 성적과는 약간 차이가 있었고, 친구들은 모두 이상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 블록들이 어떻게 맞춰질 수 있는지 큰 그림을 한 번 보면 그들도 아마 비슷한 생각을 했을 거라고 믿는다. 이 책을 읽고(혹은 이 책의 원본에 해당하는 TV 시리즈를 보고), 과학자가 된 분들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추천하는 책. 하지만 이 책은 학습용이라고만 하기엔 너무 아깝다. 그 안에 담겨 있는 온갖 경이로운 현상들, 그 경이로움에 다가가는 인간의 상상과 노력, 그리고 모두가 감탄해 마지않는 문학적이기까지 한 아름다운 표현들. 따지고 보면 과학소설(SF)이 담으려는 것 중 가장 중요한 몇 가지가 내가 그 시절에 읽었던 책 속에 들어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나도 모르게 그것들을 받아들이는 데 성공했다. 그렇다면 이 책이 과학소설 작가인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일까. 물론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SF적 발상의 뿌리를 파고들다 보면 이 책을 만나게 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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